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재난영화 터널 (현실, 허점, 무관심)

by 핏베어 2025. 6. 4.
반응형

*영화 <터널> 포스터 / 제작사 어나더선데이 / 출처 나무위키

 

2016년 개봉한 영화 *터널*은 단순한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무너진 터널 속에 갇힌 한 남성의 고립 상황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재난 대응, 언론의 태도, 정치의 무책임함까지 총체적으로 조명합니다. 특히 *터널*은 영화적 연출을 넘어서, 실제 재난 사고에서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터널*의 줄거리와 그 안에 내포된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현실과의 접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현실을 반영한 줄거리 구성

*터널*의 이야기는 정수(하정우 분)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다 터널이 무너져 고립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구조는 매우 정교합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현실 기반'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적인 장치보다는 실제로 발생할 법한 상황과 문제들을 세밀하게 풀어냅니다.

 

정수는 손전등, 휴대폰,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을 위한 생일 케이크라는 제한된 자원으로 생존을 시도합니다. 이와 동시에 밖에서는 구조 작업이 시작되지만, 재난 대응 체계의 허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장비 부족, 예산 문제, 명확하지 않은 구조 책임 체계 등은 구조 작업의 지연을 불러오고, 정치권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언론은 정수의 생존 여부에 집착하거나 선정적인 보도로 국민감정을 자극합니다.

 

줄거리 중반부터는 구조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 문제까지 제기됩니다. 비용 대비 효과, 터널 공사 재개 등 다양한 압박이 구조팀에 가해지고, 결국 구조를 포기하자는 의견이 등장합니다. 정수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논의가 이뤄지는 모습은 극적 허구가 아닌 실제 재난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입니다. 세월호 참사,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터널*의 줄거리는 단순히 '터널 속 한 사람의 생존'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 전체의 시스템과 구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조차 구조해 내기 어려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적 성찰을 유도합니다.

재난 구조 시스템의 허점과 무책임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부각되는 메시지는 한국 사회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수가 갇힌 직후, 구조팀이 출동하고 장비를 동원하지만, 터널 붕괴의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일이 즉흥적으로 진행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조의 우선순위가 '인명 구조'가 아닌 '정치적 이미지 관리'에 있다는 점입니다. 구조 책임자인 대형(오달수 분)은 초반엔 진심으로 구조를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윗선의 압력과 외부 요인으로 점차 타협하게 됩니다. 이는 공무원 사회 내의 ‘개인의 의지’가 구조적인 한계 앞에서 무력해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구조 장비 대부분이 수입산이라 부품 조달에 시간이 걸리며, 현장 인력도 훈련이 부족합니다. 이 점은 실재했던 여러 사건들과도 유사한데, 예컨대 세월호 당시의 민관군 협업 실패, 구조 리더십 부재 등의 문제들이 그대로 반영된 느낌을 줍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는, 아직 생존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손실’과 ‘시간 낭비’를 이유로 구조를 포기하자는 논의가 시작됩니다. 이는 인간 생명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는 관료주의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터널*은 ‘사고 이후의 혼란’보다 더 큰 문제는 ‘시스템 그 자체의 부실’ 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개인의 고립과 사회의 무관심

*터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정수와 그의 아내 세현(배두나 분)을 통해 보여주는 ‘정서적 거리감’입니다. 정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세현은 남편을 믿고 구조대에 호소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 부부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식어갑니다.

 

사회는 재난을 ‘뉴스’로 소비합니다. 초반에는 하루 종일 보도하던 사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극적인 사건’에 밀려 사라지고, 그 피해자는 점차 잊힙니다. 이는 *터널*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로, '망각의 속도'에 대한 비판입니다.

세현은 인터뷰에서 "아직도 그 사람은 거기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녀에게 “이제는 포기하라”는 말을 건네는 주변 인물들이 늘어나죠. 이 장면은 재난이 장기화될수록 피해자 가족이 겪는 ‘이중 고통’을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정수 또한 자신이 잊히고 있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꺼지고, 무전 신호도 점차 끊기며, 그는 자신이 ‘사회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이는 물리적 고립뿐 아니라, 심리적 고립까지 겹치는 이중적 절망으로 관객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즉, *터널*은 '재난의 개인화'와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며,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닌 정서적 밀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화 *터널*은 단순한 영화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재난 대응 현실, 미디어의 소비 구조, 정치의 비효율성, 그리고 사회적 망각까지 폭넓게 비판합니다. 무너진 터널은 곧 무너진 시스템이며, 그 안에 갇힌 정수는 우리가 외면했던 수많은 ‘누군가’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한 개인의 생명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며, ‘책임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되묻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도 영화 *터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민낯을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재난 앞에서 과연 우리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