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포스터 / 제작사 더램프 / 출처 나무위키
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감동 드라마를 넘어, 언어와 민족 정체성, 그리고 그 언어를 지켜낸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귀중한 작품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일제의 탄압에 맞서 순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조선어학회와 그 구성원들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진 힘과, 말이라는 것이 곧 사람의 삶이자 역사임을 강조하며, 그 언어를 지켜내기 위한 사람들의 희생과 열정을 진정성 있게 그려냅니다.
순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기다
‘말모이’라는 제목은 ‘말을 모으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영화는 이 단어의 의미처럼,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모으고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과정을 조명합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조선어학회의 구성원들로, 일본의 언어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이는 단지 ‘사전 편찬’이라는 학술적 작업이 아니라,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극 중 인물들이 모으는 단어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순우리말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여쁘다”, “가만히”, “사그라지다”와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말이지만, 영화에서는 그 단어들이 가진 정서와 뿌리, 그리고 그 단어를 지키기 위한 고통과 희생을 부각합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말’이라는 것이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민족 정체성의 핵심임을 절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학교에서조차 일본어만을 사용해야 했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몰래 모임을 갖고, 단어를 정리하고, 필사적으로 문서화합니다. 한 단어를 수집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언어가 그 지역의 삶과 문화, 기억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영화가 ‘단어’라는 작은 단위에 담긴 사람들의 정서를 세심하게 그려낸다는 것입니다. 단어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정신적 기반인지 깨닫게 됩니다. '말모이'는 언어를 단지 사전 속의 문자로만 보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 존중합니다. 그 감동은 관객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우리말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감동 서사의 구조와 인물의 변화
‘말모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영화로, 픽션 요소를 가미하여 극적인 감동을 극대화합니다. 영화는 조선어학회에 속해 있는 학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글도 모르는 평범한 인물 ‘김판수’(유해진 분)의 성장 서사를 통해 관객이 더욱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판수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지만, 점차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고 말모이 작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의 변화는 ‘말의 힘’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영화의 핵심 감동 요소 중 하나입니다.
김판수와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류정환’(윤계상 분)은 학자이자 조선어학회에서 사전 편찬을 주도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원칙적이고 엄격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말에 대한 책임감과 신념은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의 목표 아래 협력하게 되면서 신뢰와 우정을 쌓아갑니다. 이들의 갈등과 화해, 협력은 영화의 감정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입니다.
또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말모이 작업에 참여하는 수많은 무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이유로 언어를 지키려 애쓰며, 그들의 일상 속 희생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한 체포 장면은, 단어 하나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설정은 단어와 말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며, 언어의 가치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스토리 전개도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갈등-변화-협력-희생-완성이라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며, 마지막에는 큰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말모이 사전이 완성되지 못하고 좌절될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인물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단어를 전달하려는 모습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합니다. 이 영화가 단지 슬픈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언어의 힘과 사람 간의 연결을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시대배경의 사실성, 그리고 그 안의 상징성
‘말모이’는 194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의 서울을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는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배경 묘사에 있어서도 사실성과 몰입도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과 낡은 가옥, 일본군 순사들이 거리를 순찰하는 장면 등은 당시 민중이 겪었던 억압과 불안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영화가 시대의 억압을 단순히 설명적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물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영화 속에서는 일본어 사용이 의무화되고, 조선어 신문과 서적은 금지되며, 학교 교육에서도 조선어는 배제됩니다. 이런 상황은 인물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전을 편찬하려는 동기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듭니다.
또한 배경으로 묘사되는 경성의 거리와 풍경, 전차, 신문사, 경찰서, 조선어학회 내부 공간 등은 역사적 고증에 기반한 재현으로, 단순한 장치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1940년대로 직접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또한 당시 현실 속에서 ‘말’이란 어떤 의미였는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창으로 기능합니다.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말모이 작업이 지속되었다는 점은 언어가 단지 문자로서가 아니라, 저항의 도구였음을 의미합니다. 조선어학회가 단어 하나하나를 모으며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언어 체계가 아니라, 민족의 역사이자 존엄성이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가 영화 곳곳에 배어 있어, '말모이'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민족사적 의미까지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말모이’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람의 삶을 연결 짓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입니다. 순우리말의 아름다움, 인물들의 감동적인 서사, 시대배경의 사실성은 이 영화를 단순한 역사영화를 넘어선 인문학적 성찰의 계기로 만듭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말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지금 사용하는 말속에 담긴 희생을 알고 있는가?"
이제는 자유롭게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말모이'를 통해 그 언어의 뿌리를 지켜낸 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어 하나에도 혼이 담겨 있고, 말은 그 민족의 정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모이'는 그 기억을 되살리는 영화이며, 언어의 힘과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깊고도 위대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입니다.